오늘은 이 책에 있는 내용으로 간단하지만, 매우 중요한 것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생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생존'이다.
지각을 가진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잘 사는 것이고,
그 다음이 영원히 사는 것일 터다.
그래서 권력의 정점에 선 자들이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모습을
역사속에서 수없이 찾을 수 있다.
유기체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먹어야 한다.
역사를 단순화하면
먹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생산하고 나눌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기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고 나누는 활동'을
우리는 '경제활동'이라고 부른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결국 이 경제문제, 즉 '먹고 사는 문제'가 인류의 역사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말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역사는 흘러왔고, 흘러 갈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흔히 5단계로 구분한다.
1.원시 공산사회, 2.고대 노예제 사회, 3.중세 봉건제 사회, 4.근대 자본주의, 5.현대
각각의 시대를 정의하는 것은 그 시대를 움직이는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생산수단'에 의해 결정된다.
원시 시대는 수렵과 채집을 통해 먹고 살았다.
자연에 있는 것을 취할 뿐 생산이라는 개념이 없다. 그래서 생산수단도 없다.
그래서 신분도 계급도 없이 모두 평등하고 모두가 공유하는 공산 사회다.
물론 사냥을 더 잘하고 힘이 더 쎈 사람이 우위에 있었겠지만,
그것이 세력화되고 계급화 되어 사회를 운영하는 주체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고대 노예제 사회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나뉜다.
농업혁명으로 인해 농사를 짓게 되면서
농사를 지을 땅, 즉 '토지'가 생산수단이 된다.
따라서, 토지를 더 차지하기 위한 영토 전쟁 주가 되는 시대이고,
그 결과 패전국의 국민을 노예로 삼아 농사, 즉 생산활동을 시키는 노예제가 중심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국가의 규모가 커지게 됨에 따라
효율적인 국가 운영을 위해 공을 세운 신하들을 중심으로 토지를 하사해서
자체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봉건제로 시스템의 변화가 일어난다.
농업이 여전히 핵심산업이었기에 생산수단 또한 여전히 토지다.
다만, 유럽 기준 영주가 소유하고 지배하는 토지를 말하는 '장원'이라는 명칭이 새로 부여된 것 뿐이다.
그리고, 농업혁명을 잇는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나고
드디어 생산수단이 토지에서 '공장'으로 바뀌게 된다.
지배계급 또한 토지를 소유한 왕과 영주에서 공장을 소유한 '부르주아'로 바뀐다.
이후에 전기, 석유를 중심으로 한 2차 산업혁명과
인터넷과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3차 산업혁명을 지나는 현대에 이르고 있지만,
생산수단은 여전히 공장이고,
당시 산업혁명을 토대가 되었던 기술혁명(증기기관, 분업화)과 사회혁명(자본주의, 불환화폐, 유한책임제도) 또한
에너지원의 변화를 빼면 거의 그대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시대를 구분지을만한 사회구조적 변화는 없다.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근대 산업화는 자본주의를 낳았고,
자본을 투자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자본주의 하에서는
대형공장, 분업화에 따른 대량생산에 의해 필연적으로 '과잉공급'이 발생한다.
쉽게 말하면,
돈을 벌고 싶어서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팔아야 하는데
많이 만드는 것은 의지로 해결되지만,
많이 파는 것은 '수요'가 있어야 하므로 한정된 수요로 인해
공급이 과잉되는 것은 불가피한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인류의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수요를 늘리는 방법은 1. 새로운 수요를 발굴하거나, 2. 가격을 내려서 수요를 늘리는 것 뿐이다.
첫 번째인 새로운 수요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쟁탈전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1,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이 과정을 간단히 짚어보면,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을 통해 양모산업이 크게 성장했고,
결과적으로 양모제품이 과잉생산되어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했다.
가장 큰 예로 인도가 있다.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해서 양모제품을 팔고
그 댓가로 아편 등을 받아
이를 중국에 다시 팔고 홍차를 댓가로 받아
다시 미국 등 다른 식민지에 파는 무역을 해서 생산과잉문제를 해결하고 이익을 챙겼다.
이렇게 식민지를 통한 문제 해결은
뒤늦게 산업화해서 식민지가 부족한 독일에게는 부러운 '남의 떡'이었고,
결국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을 명분으로 1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2차 세계대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
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한 배상금으로 나라가 망할 위기에 봉착하자
선동가 히틀러가 등장해서 결국 전쟁을 통해서 배상금도 안내고
다른 나라 식민지도 뺏자는 결론에 이르러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이다.
두 번째인 가격인하 경쟁으로 인해
끊임없이 경제침체, 심지어 대공황이 발생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제 2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식민지 개념이 사라진 세상에서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가격을 내려서 더 사게 만드는 것 뿐이다.
가격인하는 비용절감으로 이어지고
비용절감의 가장 큰 방법은 해고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다.
또한 가격경쟁에서 패한 기업의 직원은 자연적으로 해고된다.
문제는 노동자가 곧 소비자라는 사실이다.
해고는 아니더라도 급여가 줄거나, 고용 자체가 감소되면
결국 소비, 즉 수요가 줄어든다.
수요가 줄면 가격을 더 내려야 하고, 고용은 더 감소되어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계대공황이 2차 세계대전 발발에 영향을 주었듯
경기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자신보다 약한 국가를 침탈하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되므로
자본주의는 전 지구적 협조와 노력에 의해서만 굴러갈 수 있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그마저도 자본주의를 능가하는 체제를 찾을 수 없는 관계로
소위 케인즈주의라고 하는 수정자본주의와 같이 수정과 보완을 할 뿐인 것이다.
정리하면,
인류의 역사는 생산수단에 의해서 그 구조가 형성되고 변화되어 왔고,
농업 중심인 과거에는 토지가 생산수단이었고,
그로 인해 왕과 영주가 지배계층이었다면,
산업화 이후의 근현대는 공장이 새로운 생산수단이 되었고,
공장을 가진 부르주아가 지배계층이 되었다.
그리고, 산업화 이후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공급과잉을 낳았고,
이로 인해 세계대전과 순환적 경기침체라는 비극이 빚어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공급과잉이다.
공급과잉으로 현대 국제관계의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핵심은 공급과잉이고,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공급과잉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그보다 나은 체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2가지다.
전쟁과 유행이다.
식민지 문제가 아니더라도 전쟁을 하게 되면 엄청난 전쟁물자 수요로 인해
공급과잉의 문제가 일시적으로 해결된다.
유행은 꼭 필요하지 않아도 사게 만다는 힘이므로
유행에 포함된 제품에 한정해서 공급과잉의 문제가 해결이 된다.
때문에,
전쟁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악당을 만들어 내야 한다.
유행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타를 만들어 내야 한다.
전쟁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래서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 미국이 새로운 적을 만들어 내기 위해
그토록 노력한 것이다. (전부가 만들어 낸 적은 아니겠지만.)
이라크전쟁의 이유로 내세웠던 대량살상무기를 전쟁이 끝난 후에도 찾아내지 못했던 것으로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음모론적 이야기일 수 있겠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세력을 여러가지 명분을 만들고 무기 또는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하나의 거대한 악의 축으로 만들어 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유행의 측면에서 보면,
유행이란 것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여러 갈래가 있을 수 있지만,
간단히 보면 선망하는 대상, 즉 스타가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에 있다.
그래서 영웅만들기, 스타만들기가 자본주의가 발달한 나라일 수록 극심한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
전쟁이든 유행이든
이것들을 만들어 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미디어'다.
SNS과 개인미디어가 활성화되어 예전 보다는 약화되었다고는 하나
전통의 대형미디어가 전쟁과 유행을 만들어 내는 중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전쟁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일반인이 원인과 과정에 접근하기 어려운 반면
권력화된 대형미디어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유행은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막아야 하는 것이다.
공급과잉이라는, 체제를 위협하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미명이라할지라도
전쟁이 그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어찌보면 너무나 어려운 문제를 마주해서
가장 택하기 쉬운 방책이 전쟁일 수 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쉬운 길은 궁극적으로 옳지 않다.
어려운 목표를 이루는 데 쉬운 방법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쉽게 선택하는 자를 멀리해야 하고
그 과정을 호도할 수 있는 미디어를 옳은 방향으로 개혁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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