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당은 우리 사회의 특정계층의 입장을 대변할 뿐이다.
보수 정당들이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진보 정당들이 서민과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욕먹고 비난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정당이 아니라,
어떤 정당이 자신을 대변하는지 모르고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늘, 아니면 자주 정치인을 욕하고, 정당을 욕한다.
뉴스를 보면서 혼자서도 욕하고, 술자리에 모여 앉아서 다 같이 욕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에는 오랫동안 있어 본 적은 없어 잘 모르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정치는 늘 관심이 집중되는 분야인 듯 하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은 거의 유일한 분단국가이고,
정반대되는 정치, 이념체제를 가진 나라가 바로 위에 있어 대치 중이고,
몇 차례의 쿠데타 정권, 군사정권을 거치며 정권유지를 위한 장기간의 이념전쟁이 일으켰고....
그러한 역사 속에서 많은 안타까운 사태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가정이 그러한 사태의 피해자 또는 가해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불순한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이념갈등, 지역갈등, 계층갈등 등의 프레임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투표를 해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는 쪽에 내 소중한 1표를 행사하는 것이 기본중에 기본인데도 말이다.
그러한 점에서 나는 서두의 글에서 울림이 느껴졌다.
나는 어떤 정당이 나를, 나의 이익을 대변하는지 알고 투표를 했는가?
그렇게 특정 정당을 비난하고, 특정 정치인을 비난하면서
그 반대급부로 행사한 내 소중한 1표는 나를, 나의 이익을 대변해 주었는가?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고,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결국 나라를 부강하게, 국민들이 잘먹고 잘살게 만다는 것이므로,
정치는 결국 경제를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2500년전 공자도 정치란 무엇인지 묻는 경공의 질문에
정재절재(政在節財)
"정치는 재물을 아껴쓰는 데 있다."
라는,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건전재정'에 해당하는 경제적 관점에서 정의를 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를 논하려면 먼저 경제체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는 것이 필수다.
오늘날의 경제체제는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애덤스미스로부터 시작된 초기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대응으로 갈라져 나온
공산주의,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를 거쳐 신자유주의까지 흘러왔다.
참고로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는 산업혁명을 통해 늘어난 생산물, 즉 공급과잉으로 인한
경기침체이고, 경기침체는 결국 피라미드 최하층을 구성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소련을 중심으로 생산수단을 국영화해서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공산주의가 발호하였고,
한편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정부재정을 동원해서 경기침체를 이겨내야 한다는 수정 자본주의, 즉 후기 자본주의가 나온 것이다.
이후 소련의 붕괴로 인해 경제체제로서의 공산주의는 사실상 체제대결에서 지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공산주의라는 자본주의 최대 숙적이 사라지자
노동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가 늘어난 후기 자본주의는
다시금 오롯이 시장에 맡기자는 초기 자본주의로 돌아가려는 관성이 강하게 작동하였고,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다.
이러한 힘이 작동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생산수단을 개인이 자유롭게 소유함으로써 자본력이라는 기득권을 누려야 하는데
자본력이란 것도 결국 그 생산수단을 돌아가게 해줄 노동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을 개인에게 빼앗아서 노동자에게 준다는 것이고,
노동자들은 거기에 솔깃해서 넘어갈 지경이니
노동자들의 복지를 좀 늘려줘서라도 공산주의로 넘어가지 않게 꼬드겨야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공산주의가 되면 전부를 잃게 되니까, 일부를 노동자에게 줘서 공산주의를 막자라는 기득권세력의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공산주의가 사라졌으니, 그 일부를 줄 필요가 없어졌고,
'다시 산업혁명시대의 돈벌기 좋았던 초기 자본주의시대로 돌아가자'가 된 것이고,
그것이 바로 신자유주의다.
중요한 것은 이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느냐 아니냐로 정치이념이 갈린다는 것이다.
즉 오늘날 소위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와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로 나뉘는 것이고,
'성장이 우선이다'와 '분배가 중요하다'로 나뉘는 것이고,
이것이 곧 '신자유주의'와 '후기 자본주의'의 지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보수 정권하에서는
세율을 낮추고, 복지를 줄이는 정책이,
징보 정권하에서는 반대로
세율을 높이고, 복지를 늘리는 정책이 나오게 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늘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한 정책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는 정치적 선택이 일어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직관적으로 보면,
자본력을 가진 기득권 계층은 보수 정당을,
자본력이 없는 서민 계층은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기득권 계층도 있고,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서민 계층도 존재한다.
진보 정당을 지지하는 기득권 계층은 합리적 설명이 가능하다.
기득권으로서 풍족한 환경속에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으면서
경제적 관점에서 중산층과 서민층이 두터워지는 것이 전체적으로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사회적 관점에서 부의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전체적으로 장기적으로
큰 사회적 부담과 비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도덕적 관점에서 부자가 더 내 놓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문화를 형성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면에서 볼 때 기득권이지만 서민층을 위한 정책을 펴는 진보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해가 어려운 것은 반대의 경우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서민 계층.
서민계층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환경속에서 낮은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워낙 교육열이 높기 때문에 세계최고의 대학진학율이므로
교육의 문제가 크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중산층과 서민층이 얇아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회적 관점에서 부의 양극화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도덕적 관점에서 기득권 계층의 부의 세습이 가능한 구조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어느 모로 보나 이해하기 어렵다. 합리적인 판단이라 볼 수 없다.
그래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교육의 문제로.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무려 14~16년간의 학교교육에서
정치체제와 경제체제, 그리고 그와 관련된 세계의 역사,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교과서의 내용도 그러하고, 선생님의 가르침도 그러하고,
그것을 배우는 방식도 주입식, 암기식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과과정의 그 수많은 과목과 학습내용 중에서도
어찌보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밀도있게 배우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정치과 경제는 역사와 더불어 매우 밀도 있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깊이 있게 배워야 한다.
그래야 보수가 무엇인지, 진보가 무엇인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나는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나 또한 그토록 오랜 기간 정치와 위정자들을 욕하면서도
단 한번도 보수와 진보의 가치, 그것이 경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안에서 어떤 역사적 사실이 있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요즘에야 읽고 있는 이 교양서 하나로 인해서야
비로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국가 중 하나로 인식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세계적 기준으로 볼 때, 국회 원내 1, 2당이 모두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의 범위를 유지하여 자본가와 기업의 이익을 중시 여기기 때문이다.
즉,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이 체제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서 세율의 조정과 복지의 지원규모의 변동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두 번의 평화적인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국가도 되어 버렸다.
즉, 국민의 힘으로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정권을 바꾸는, 세상에 유례없는 나라인 것이다.
그러한 대단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나와 나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나의 소중한 1표를 행사하는 내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투표의 중요성, 한표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그 소중한 권리는 제대로 행사하기 위한 첫 걸음은
바로 나의 위치를 아는 것이 아닐까?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딘지를 알아야,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내가 지지해야 할 정당을 선택할 수 있다.
특히나, 구조적으로 기득권세력의 입장일 수 밖에 없는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편식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왜곡없는 역사적 사실과 시사점을 공부해야 한다.
나의 위치를 아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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